[20130511] 대전-서울전 보고난 잡상 축구-경기

0. 들어가며

블로그에 글 남기는건 사실 지금도 망설여집니다.

제가 예전처럼 축구를 신명나게 볼수 있을까......
여전히 경기장 한번가기 어려운 팔자에서 성실하게 글을 쓸수 있을까...

그래도 어제 대전경기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다시 제 축구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하루 늦었지만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보게된 어제 대전경기에 대한 소회를 남겨봅니다.

1.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대전은 일단 김선규 골리에 이강진, 윤원일, 박진옥, 이웅희 선수 포백을 짜고, 정석민, 김태연선수가 수미, 주앙파울로, 김병석, 허범산 선수가 측면과 중앙의 공격미들, 그리고 이동현 선수로 톱에 배치되는 형태입니다. 기본적인 공격의 틀은 이동현선수가 중앙에서 상대를 유인한 빈공간에 주앙파울로, 허범산, 김병석 선수가 파고들어가는 형태의 공격을 선보였습니다.

이에맞서 서울은 김용대 골리, 김진규, 김주영, 아디, 차두리 선수로 포백을 짜고, 고명진, 하대성선수가 중앙미들로, 몰리나, 에스쿠데로, 윤일록 선수가 좌우 측면과 중앙을 파고들고, 데얀선수 톱입니다.

양팀의 진형이 비슷한것 같지만, 사실 서울은 공격을 위한 포진입니다. 다섯명의 미들과 좌우 풀백, 센터백 까지 전면적 침투를 팀의 기본사상으로 가져갑니다. 최근 이팀이 실점이 많은 이유도 이러한 팀 전술특성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오히려 전년도 챔피언에 대한 경계로 공격이 전년도 만큼 잘 안풀리는 상황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반면 대전은 오늘은 안정적 수비를 기반으로 빠른 역습보다는 롱볼을 일단 이동현 선수가 잡아서 간수해준 틈에 공격 미들이 올라가서 마무리 짓는 형태의 공격을 선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 강팀을 잡기위한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2. 경기에 들어가서

이 경기를 보고 제가 뭔가 짠한 느낌이 든 이유는 대전이 정말 많은 준비를 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였습니다.

이번경기로 본 대전은 사실 리그 최하위권을 맴돌만한 상황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도 많고, 득점은 단 8골에 불과할 정도록 공수 양면에서 문제점을 보이고 있었죠. 이러한 상황에서는 팀의 사기도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뭔가 반전의 계기가 필요한거죠.

전년도 우승팀과 대등한 경기를 펼쳐 승리한다.. 이런 상황은 아주 좋은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줄수도 있었을 겁니다. 프런트, 선수, 감독, 그리고 팬들 조차 이러한 상황에 모든것을 걸고 준비를 한듯한 그런 결사의 각오가 느껴졌습니다.

상대인 서울은 확실히 공격에 치중한 전술답게 공격루트가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중앙에서 몰리나, 하대성, 고명진 선수등 기술도 패스도 좋은 선수들이 버티다 보니 아군이 자리를 잡을수 있는 충분한 시간동안 중앙에서 볼을 간수해 주다가 최적의 상황에 공격이 전개됩니다. 상대팀 입장에서 어지간한 집중력으로 이를 차단하기 어려울 상황이었습니다.

하물며 대전은 이전경기까지 리그 최소득점 그룹에 들어있는 팀이죠. 한골이라도 실점하면 아마 심적 부담이 상상을 초월했을 겁니다. (서울도 실점은 상당한 수준이긴 합니다만요)
이런 상황에서 선수들의 집중력도 아주 좋은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제골은 서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일단 김선규 골리의 판단미스도 좀 있었지만요, 사실 이건 서울의 공격전술과 스타일로 보면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서울의 중앙미들이 적진에서 볼간수를 오래 해주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점은 공격방향을 아주 늦은 시점에서도 변경할수 있다는 소리고, 상대의 판단미스를 불러오기 아주 좋은 상황입니다. 오히려 후반 8분 까지 적절하게 방어한 대전 수비진의 집중력을 칭찬해야 하는 상황이죠.

전 여기서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 정말 준비를 많이 했는데... 선수들도 정말로 집중 많이 했는데... 이대로 아쉽게 끝나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준비한 것에 비해 너무 안타까운 상황이다보니 정말 야속한 느낌도 들고.... 대전 선수들 이대로 의기소침 해지면 어쩌나...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멋진 팀이 거기서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실점을 한 김선규 골리는 이 이후 진짜 멋진 선방을 보여주면서 위기상황을 잘 막아내고, 중앙수비인 이강진선수와 윤원일 선수 집중력도 아주 좋았습니다. 주앙파울로 선수도 오히려 투지를 불사르더군요.
사실 여기 까지만 해도 전 이 친구들 잘했다고 했을 겁니다.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지를 불사른다. 이건 말이 쉬운거니까요.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인 이웅희선수를 서울 수비진이 놓치면서 동점골이 터진겁니다!!

아 정말 이순간의 환희는 진짜 말로 표현할수가 없었습니다. 아 진짜 노력하면 그 보답이 오는구나, 하늘도 무심하진 않구나....

그리고 경기종료가 거의 다된 46분 까지 서울의 파상공세를 정말 잘 막아주었죠. 이때까지도 사실 비겼지만 거의 이긴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비겼지만 거의 이긴기분' 이 화근이었을까요. 후반 46분. 경기거의 끝나가는 시점에 몰리나선수의 스루패스가 침투해 들어간 하대성선수에게 연결되고, 하대성 선수는 이를 정말 여유있게 툭 건드려서 골리를 넘겨 득점한겁니다.

진짜 눈물이 나더라구요. 준비도 많이하고, 혼신의 힘을 다했고, 위기를 맞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기회를 잡았는데, 그 기회가 신기루 처럼 사라지는....... 정말 비극적 엔딩의 드라마를 본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경기는 이대로 종료됩니다.

3. 눈에 띈 선수들.

일단 대전에서는 이동현 선수입니다. 이선수는 안타까워서 눈에 띈겁니다. 사실 중거리슛 날린것도 아주 임팩트 있었고, 서울 수비를 상대로 위치선정이나 공중볼 따내는 능력, 그리고 아군 미들이 올라오는 시간동안 볼 간수하고 거기서 플레이 메이킹 하는 것. 하여간 이런거 보면 과거 대전에서 전방의 블루워커 '샤프' 김은중 선수도 생각나고, 부천의 곽경근 현 감독님도 생각나고... 하여간 기량이나 이런건 정말 좋았는데요. 뭔가 너무 착한 친구를 보는 느낌인겁니다. '여긴 내자리다 이 거지같은 놈들아!!' 하고 외치는 듯한 모습이 좀 안보인다고 할까요.... 내 역할은 우리팀 선수들이 골을 넣을수 있으면 되는거다. 이런 모습이었다는 거죠.

이동현 선수.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보입니다. 좀더 욕심냈으면 좋겠어요.

서울에서는 미들진영. 특히 하대성 선수입니다. 이팀은 솔직히 중앙미들이 너무 좋아요. 이정도의 지공이 가능하다는 소리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수비진을 허물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공격적 측면에서는 매력적이죠. 그리고 하대성 선수는 정말 이상황에서 뭔가 즐기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되게 느긋한 성격일수도 있다고 생각되요. 이게 약점일수도 있겠지만, 전 장점으로 보입니다.

4. 정리하자면.

이번 관전평에서 서울은 악역이었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지금까지 되게 안풀리던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보고 싶은 제 사심이 들어간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 '안양' 팬입니다. 설명 끝이죠..... 북패라고 안한게 다행인거죠?)

그리고 결말이 비극이라 가슴이 아프면서, 뭔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전 선수들 힘내십쇼. 원하던 결과는 아닐지 모르지만, 제 개인적으로 원하는 과정은 얻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경기 보여준 두팀모두 감사드립니다.

....... 근데 글 다쓰고 나니까 왜 '도박묵시록 카이지' 이게 생각나는 건지 몰겠네요.... ㅜㅜ

덧글

  • 나라목수 2013/05/13 19:52 # 삭제 답글

    얼마전에 지지대더비 관련 글을 보고 넘치는 일에 조만간 태어날 아기까지 신사장님 글을 보기가 더 어려워지겠구나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빨리 글을 보게되네요.

    제가 맨처음 대전을 응원하게 되었던 계기도 신사장님 말씀하시는 짠한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몇년 사이 대전에서 있었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핑계로 관심을 끊고 살았더니 대전 선수들중에 익숙한 이름이 없네요. ㅠㅠ

    저는 애시당초 날라리 축구팬이라 경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리뷰가 더 재미있었는데, 싸커월드도 없어지고 신사장님처럼 블로그에 재미있는 리뷰 쓰시던 분들을 구글 리더에 등록해 놓았지만 모두들 나이들이 들면서 사는 것이 바뻐서인지 이런 리뷰들은 당췌 볼 수가 없네요. 다들 어디 제가 모르는 사이트에 가있는 것인지...

    오랜만에 글 재미있게 보았고,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립니다.

    덧, 아시겠지만 임신중인 아내에게 잘못한 것은 평생갑니다. 만삭인 부인에게 잘해 주세요. ㅎㅎㅎ
  • 신사장 2013/05/13 23:45 # 답글

    빡센 야근 끝에 이제 들어왔는데, 오랜만에 정말 익숙한 아이디를 보게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나라목수님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결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총각 구제해준 제 안사람한테 무진장 잘해줘야죠...^^ 근데 마음만이네요. ^^

    블로그에 글 열심히 남기던게 벌써 6년도 넘은거 같습니다. (가끔 계간 블로그처럼 글 쓰기는 했습니다만...^^ )
    그때 축구이야기를 꽃피우던 많은 분들도 아마 생활의 현장에서 열심히 살고 계시겠지요. 언제나 그리운 분들입니다.

    제 아이가 태어나면 또 글쓰기 어려워 질수도 있겠습니다만, 기회가 되면 일기처럼 적어보겠습니다.

    나라목수님 다시 뵙게되니 너무 반갑습니다. 그리운 얼굴을 다시 만나게 해준것 만으로도 글올린 보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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